폭염보다 더 혹독한
입시(入試) 한파(寒波)가 몰려온다! |
| |
|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에는 약 60만 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대학 진학과 향후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시험이다 보니 전국의 수험생들과 가족들에겐 수능일이 1년 중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폭염보다 더 혹독하다는 ‘입시(入試) 한파(寒波)’를 뚫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전국의 수험생들을 응원하며, 수능의 역사와 ‘시험’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
| |
| 수능! 넌 뭐니? |
수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현재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년 대학 입학 예정자를 대상으로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시험 제도이다. 이전까지의 시험은 ‘학력고사’라 하여 지금까지 배운 것을 평가하는 ‘암기’ 위주의 시험이었다. 그러다 ‘신교육’을 주창하며 암기 및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자는 교육 흐름이 형성되면서 탄생한 시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흔히 ‘수능’이라고도 하는 이 시험은 ‘수학능력(大學修學能力)’, 즉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목적을 두어 암기 위주의 교육을 벗어낫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동안 수능은 정권의 변화와 함께 몇 번의 시험 체제의 변화를 겪었다. 급작스런 변화로 수험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기도 했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입 3년 예고제’가 법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고2, 고3 학년생도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각각 다른 입시체제의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된다. 고교 3년생이 치르는 2017학년도 수능에서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지금의 고교 2년이 치르게 될 2018학년도 대입부터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었다. |
| |
 |
수능 문제는 어떻게 출제되나?
수능 한 달 전부터 300여명의 출제위원들이 합숙하여 만들게 된다. 출제위원은 대학교수 60%, 고등학교 교사 40%로 구성하는데 이는 전문성과 교육과정 적합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출제위원으로 선정되면 기무부대와 경찰청에서 주는 신원진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한 달간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장소에서 지낸다. 이곳엔 국가정보원의 보안요원이 배치되고, 모든 통신수단과 인터넷이 차단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보안요원들이 일일이 검사한 뒤 내보내고 다른 쓰레기는 한 곳에 쌓아뒀다가 수능 이후에 치울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수능 문제 출제의 전 과정에서 오가는 공문서와 자료는 모두 국가 기밀로 간주된다.
이처럼 철저한 감시 속에 외부와 단절된 채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는 출제위원들은 수능 당일 오후 5시 35분 시험 종료령이 울림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간다. |
|
| |
| |
수능은 왜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보는가?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은 11월 17일이다. 수능이 처음 실시되었던 1993년에는 8월 29일과 11월 16일, 두 번에 걸쳐 시험을 봤다. 미국의 SAT처럼 시험 기회를 여러 번 부여해 자신에게 더 유리한 성적을 활용하게 하자는 의도였지만, 수험생들은 두 번의 시험 모두에 엄청난 부담을 느껴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또한 1차와 2차의 난이도 조정을 실패하여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시행 1년 만에 수능시험은 연 1회 실시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2005년까지 매년 11월 셋째 주 수요일에 시험을 시행해왔다. 이후 주말 교통 체증을 피해 문제지 수송을 하기 위해 2005년부터 수능일을 목요일로 변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APEC회의 개최로 2005년에는 수능일 자체가 한 주 연기되어 수요일에 실시하였다. 이후 2006년부터 2015년까지는 11월 둘째 또는 셋째 목요일에 시험을 유동적으로 치렀으나 그동안 고3의 수능 후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가 꾸준히 제기 되어 올해(2016년)부터 수능은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치르는 것으로 정해졌다. |
| |
수능일은 수험생이 왕이다?
1월 17일 오후 1시부터 약 40여분 간은 대한민국이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영어 듣기평가를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영향을 줄 만한 일체의 소음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이착륙을 할 수 없고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는 1만 피트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부산에서 APEC 회의가 있었던 2005년에는 수능을 위해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할 수 없어 아예 수능을 한 주 미루기까지 하였고, 2010년에도 G20 회의 때문에 수능일이 한 주 미뤄졌었다. 또한 시험장 근처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려서도 안 되고 심지어는 군사훈련까지 제한된다. 근처에 철길이 있는 경우엔 그 곳으로 다니는 모든 열차는 25Km/h로 서행해야 하고, 경적을 울리거나 가속하는 등의 소음유발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만약 듣기평가 시간에 비행기 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마도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신호일 것이다. |
| |
|
수능시험과 비교를 불허(不許)한다!
|
‘459:1’ 역대 수능에서 가장 높았던 경쟁률이다. 2013학년도 단국대 천안캠퍼스 생활음악과 보컬학과가 기록한 것으로 3명 모집에 1,378명이 몰렸다. 작년에 실시한 2016학년도 수시 전체 평균 경쟁률은 18.99대 1이고, 22개교 일반전형 평균 경쟁률은 38.1대 1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리 높아도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총 33명을 뽑는 조선시대 ‘대과(문과)’ 응시자는 평균 6만 3천 명으로 약 2천 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니까. |
| |
 |
| 2015년 서울시 주최 조선시대 과거시험 재현 모습 |
|
| |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는데 이중 가장 치열한 분야가 ‘문과’였다. 문과 응시를 위해서는 ‘소과’에 먼저 합격해야 하는데,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 2단계 시험을 치른다. 이를 통과하면 그 당시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고, 성균관에서 출석점수 300점 이상이 되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대과인 ‘문과’는 다시 초시, 복시, 전시 3단계를 거쳐 최종 33명의 과거 급제자를 선발하게 된다. 마지막 관문인 ‘전시’는 급제자의 서열을 가르는 시험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사법연수원에서 성적순으로 임용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결국 조선시대 공무원이 되려면 총 5단계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것을 ‘과거급제’라 하고, 가장 높은 점수로 급제한 사람을 ‘장원급제자’라고 한다. 참고로 장원급제한 사람의 점수가 오늘날로 치면 B+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D학점 수준의 점수로 과거에 급제했다고 하니, 당시 시험 점수가 얼마나 박했는지 알 수 있다.
급제하기도 힘들지만, 이런 정기시험이 식년시(式年試)라 하여 3년마다 열리다보니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했다. 평균 2000:1이었고 심할 땐 3000:1을 넘어서기도 했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다. 보통 5세~8세부터 과거급제를 목표로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했기 때문에 평균 30년을 공부해야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합격자 중 15%는 40~50세였다고 하니, 평균 수명 50세를 넘기 힘들었던 시절에 35세 이후 합격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힘든 과거시험이었지만, 신분 상승의 방법이자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보니 우리 조상들은 과거보러 가는 길을 ‘영광을 보러간다’는 뜻의 ‘관광(觀光)길’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여행을 의미하는 관광길로 쓰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고 하겠다. |
| |
|
조선시대에도 부정행위는 있었다?
|
| 합격을 위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인 듯하다. 오히려 부정행위만 놓고 보자면 오늘보다 옛날이 더 빈번했고 방법도 교묘했었다. |
당시에는 시험장을 1소(所), 2소로 나누어 부자나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이 한 곳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게 했고, 시험장 입구에 수협관(搜挾官)을 세워 응시생들의 몸을 철저히 수색하게 했다. 또 응시생들은 시험장 안에 종이, 붓, 먹, 벼루 이외에는 어떤 물건도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 만일 책 등을 숨기고 들어가다가 들통 나면 몇 년씩 응시자격이 박탈당했다.
하지만 부정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남몰래 책을 들고 들어가 베껴 쓰거나 남의 답안지와 바꿔치기를 하고, 예상 답안을 미리 써서 콧구멍이나 붓대 끝에 숨겨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또 글 잘 쓰는 사람을 몰래 데리고 들어가 답안을 대신 쓰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시험 제목을 시험장 밖으로 알려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한 뒤 시험장 군졸을 매수하여 답안을 가져오게 하기도 했고, 시험관과 짜고 답안지에 암호를 표시하여 합격자 명단에 끼워 넣기도 했다.
이런 부정행위를 막으려고 영조는 합격자 발표 다음 날 합격자들을 불러 자기가 작성한 답안지를 외우게 했다고 한다. 만약 외우지 못하면 합격을 취소했다고 하니 당시 부정행위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는 19세기 후반에 들어 더 극에 달했다. 결국 실학자들이 과거시험의 폐단을 강조하면서 폐지를 주장하게 되었고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500년간 이어져 오던 과거시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
[평생도] 중 [소과응시]부분. 필자미상.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조선시대 풍속화] |
|
|
|
| |
|
요건 몰랐지? 과거시험 진기록!
|
★ 과거시험 최연소 급제자 15세 이건창
1866년 고종4년에 합격했지만 너무 어려 4년 뒤에 벼슬을 제수 받았다.
★ 과거시험 최고령 급제자 83세 박문규
1887년 고종 24년에 합격, 임금이 그 노력이 훌륭하다 여겨 파격적으로 정3품의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1년 뒤에 사망했다. 결국 평생을 ‘취준생’으로 살아온 인생이 되었지만 죽기 전 자신의 꿈을 이뤘으니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다.
★ 과거시험 최고의 천재 율곡 이이(李珥)
오천원 권의 주인공이자, 조선 시대 최고의 천재로 널리 알려진 율곡 이이는 1548년 명종 3년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29세에 대과에 급제하기까지 9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다. 1556년 별시에서 당대 학자 수백 명이 몇 달을 고심하여 만든 문제를 3시간 만에 ‘천도책(天道策)’이라는 제목으로 답안을 작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율곡이 작성한 ‘천도책’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한편 [징비록]으로 유명한 서애 유성룡은 율곡과 동시대를 살았던 죄로 만년 눈물의 2등을 했다고 한다. |
 |
★ 불운을 뛰어 넘은 불굴의 의지, ‘장한철’
1770년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제주도를 출발한 장한철은 태풍을 만나 한양이 아닌 일본 오키나와에 표류하고 만다. 왜구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겨우 목숨을 건진 장한철은 우여곡절 끝에 배를 구해 한양을 향하지만 가는 도중 다시 태풍을 만나 결국 과거시험이 끝난 뒤에야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장한철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표류기를 ‘표해록’으로 엮었는데 이것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3년 뒤 과거시험에 다시 도전하여 당당히 합격했다고 하니 불굴의 급제자라 하겠다.
★ 평균 길이 10m. 길고 긴 답안지
수능으로 치면 과거시험은 논술형이다. 그러나 작성하는 양만 따지면 수능의 몇 백배라고 하겠다. 장원급제자들이 작성한 답안지 길이는 평균 10m에 이르렀다. 그것도 앞면은 물론 뒷면까지 빼곡하게 쓴 답안지다. 역대 가장 긴 답안지는 무려 12m에 이르렀다. |
| |
[ Newsletter_호 ]
